세상 모두에게 잊힌 피터 파커
그의 정체를 기억하는 역대급 빌런의 등장
시리즈 사상 가장 통제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4년 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피터 파커'.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서 뉴욕을 지키며 고독한 삶을 살아가던 '피터'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DNA 변이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힘에 사로잡히고
그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적까지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의식을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인해
모두가 '피터'를 노리는 적이 될 수 있는 혼란 속에서
'피터'는 다시 위협에 빠진 'MJ'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스파이더맨'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제 재미와 행복은 개인의 감상에서 그치고 슬픔과 위로가 공통적 정서가 된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기뻤어"보단 "나도 그래서 슬펐어."가 더 큰 공감과 반응을 끌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행복하고 완벽한 영웅보단 처절하고 슬픈 영웅이 조금 더 공감을 얻는다.
전쟁영웅인 캡틴 아메리카보다 사고뭉치 토니 스타크가 국내에서 조금 더 인기가 있던 이유도
한국인이라면 자극받지 않을 수 없는 부모와의 갈등, 인정욕구 등을 캐릭터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의 스파이더맨도 슬픔과 위로에 공감하며 봤다.
피터파커는 이전 시리즈와 달리 처절하다.
토니 스타크의 안배 아래 최신형 장비들을 가지고 ai와 놀던 치기어린 소년 피터와
모두에게서 잊혀진 채 석면이 날리는 좁다란 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 피터는 아주 다르다.
어벤져스 타워에서 수트를 만들던 정의로운 피터는 억만장자 아이언맨 토니스타크의 후계자였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외로이 살아가는 피터는 소시민들을 더 닮았다.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는 것들을 뒤로한 채 일하고, 돌아와선 잠에 드는 수많은 사람들.
물론 그들의 삶에 스펙타클함과 뭇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 로맨스는 없지만 친구와 주고받는 짧은 소통에서 오는 기쁨과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서 얻는 위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사함은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미련, 삶에서 사라진 사람에 대한 슬픔, 억울한 일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도 있을 것이다.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는 이런 감정들을 가슴에서 꺼내어 매만진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자신을 몰아세우던 피터가 MJ, 네드를 만나 짧은 기쁨과 미련을 느끼고 속았기 때문에 분노하며 같은 일을 겪은 진 그레이를 만나 공감하고 비로소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며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진은 사람들에게 빙의하여 의식을 옮겨다닐 수 있다. 본체는 다른곳에 있어도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알 수 있고, 빙의한 사람의 기억을 뒤져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작중에서 진은 이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데미지 컨트롤의 인체실험 대상자가 된다. 같은 능력을 가진 그의 언니 세라는 옛날에 잡혀가 기계-다른 사람에게 빙의하는 능력을 추적, 분석하는-를 만드는데 쓰이고 죽었다.
진은 삶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가 느끼는 분노의 원인이기도하니 복수는 진에게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세라가 죽은 방에서 진은 능력을 일깨운다. 빙의만 가능했던 세라와 달리 진의 진정한 능력은 빙의를 포함한 염력과 텔레파시다. 데미지 컨트롤이 겨눴던 칼은 진 그레이의 손에 들어왔다. 칼날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데미지 컨트롤에게,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러나 그는 피터와 대화하기 위해 잠시 복수를 미룬다. 그의 능력이면 눈 깜짝할새에 몇천명의 사람들을 작은 공으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왜 그랬을까?
진 그레이는 피터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길 바랬던 것 같다.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를 느끼길 바랬던 것 같다. 데미지 컨트롤은 이미 너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일반 사람들은 결코 너와 같은 편이 될 수 없다고. 너는 나와 같다고⋯.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분노해 자신과 같이 칼날을 쥐어주길 바랬던건 아닐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수 없어. 우리는 친구나 가족을 가질 수도 없어. 우리가 사랑한 것들은 사라졌고 목숨을 잃었지.
그러나 피터 파커에겐 메이 숙모가, MJ가, 네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진 그레이의 손을 잡지 않는다. 대신 진 그레이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도록 내버려뒀다. 피터는 이미 진 그레이와 같은 일을 겪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 무력했으며 불합리한 일을 겪었고, 주변 사람이 없이 외롭게도 살아봤다. 모든 비극이 자신의 탓이란 자책까지도 해봤다. 둘은 조금 일그러진 거울상이다. 그래서 피터는 그에게 자신이 들었던 위로를 건넸다.
넌 아주 특별한 사람이야. 그것때문에 사람들이 너에게 잔인해질 수 있고 외로워질수도 있어, 하지만 널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가 특별해서 좋아하는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거라는걸 기억해.
메이 숙모가 던진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며 둘은 일반 사회에 결코 편입될 수 없는 서로를 느낀다. 그리고 피터는 진에게 넌 혼자가 아니라며 자신이 함께 있을 것임을 말한다. 세라의 일은 유감이라고, 그러나 그게 네 잘못은 아니며 힘든 일은 혼자만 견딜필요 없다고. 결국 진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해줄 사람과 위로였으므로 짧은 시간동안 둘은 깊게 감정을 나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장면이 내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줬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거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배신당하며 살다가, 언젠가 들었던 따듯한 말과 추억을 곱씹으며 앞으로 걸어간다. 영화에서 제시한 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슬픔을 겪고 지지를 얻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혹은 듣고싶었으나 듣지 못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cf) 진은 고통으로 능력을 다듬었다(Mutant). 피터는 이곳에서 정체성(Proud)을 회복했다. 둘을 합치면 Mutant and proud라는 엑스맨에선 오랫동안 쓰인 뮤턴트들의 표어가 나온다. 어쩌면 이건 복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