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축월 학생 여흥민공...
정명 팔십 다 못살고 북망산천에 가는구나
청산 가네 청산 가네 이 청산 가는 길이
일가친척 행상행하가…
마을을 싸고도는 산맥에 구슬픈 소리가 흐른다. 친지를 잃은 유족들이 짐승마냥 우짖는다. 담에 매달린 묘하게 닮은 면면들이 긴 행렬을 바라본다. 눈물을 고름천에 찍어가며 우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완고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 어른들의 바짓단이나 치맛단을 잡아당기며 칭얼거린다.
선두에 선 깃발이 불가의 아지랑이마냥 흔들린다. 뒤를 이어 사내들이 작은 가마를 지고 깃을 쫒는다. 묵묵한 걸음걸이는 마치 쟁이를 맨 마소같다. 무색의 행렬을 지켜보다보면 마침내 형형색색의 상여가 나타난다. 시집을 가는 처녀가 타는 꽃가마처럼 화려한 상여엔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이 누워있을것이다. 상갓집 대청에 앉아 행렬을 지켜보던 명우는 어렵지 않게 그 얼굴을 떠올린다. 이제 막 신록을 피울 나이에 창백한 시신이 된 청년을. 듣기로는 요절을 했다고 했던가, 옆에 앉은 염사가 짧게 혀를 찬다.
“이제 끝이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땅에 묻으면 마음이 좀 괜찮아질거다. 물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지만….”
머리에 삼베두건을 뒤집어쓴 유족들의 행렬 사이 유난히 휘청이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무로 된 지팡이에 온 몸을 내던지듯 기대어 걸어가는 모습이 강변에 널린 엉킨 갈대같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는 이 때까지 감정이란 것을 제대로 내비친 적이 없을 것이다. 상복을 입은 그가 장사를 지내는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모습을 명우는 기억한다. 그러나 어미된 자로 한계에 다다랐는지 여인의 절뚝이는 걸음마다 핏물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고통에 떠는 그의 몸을 주변의 여인들이 부축한다. 단장의 고통과 별개로 상여는 시간이 흐르듯 길을 지나간다.
“참척은 보통 장례를 치르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지. 근데 어련하겠어. 본관은 아니라지만 장손이 비명횡사를 했는데.”
한이라도 풀어주려고 하는거겠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염사가 곰방대를 물었다. 매캐한 향과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잠시 차디찬 겨울바람이 영역을 주장하며 바람과 함께 그를 밀어낸다. 명우는 계속해서 행렬을 바라본다. 상여에 매달린 화려한 장식들이 바람따라 휘날렸다. 누구도 저 상여에 아비보다 아들을 먼저 싣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산에도 아랫층을 먼저 채우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논밭 너머로 사라지는 행렬에서 눈을 뗀 명우가 염사를 바라본다.
“장지에는 가지 않으십니까?”
“여기가 무슨 동넨데 거기까지 따라가. 염만 해줬으면 됐다. 가족들도 그걸 바라는 눈치구. 그리고 가봤자 구경밖에 못해. 그러느니 이참에 나도 좀 쉬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엔 피로가 흐른다. 염사는 담뱃대로 대청을 쳐 재를 털었다. 습을 한 뒤로 며칠 밤낮을 샜다. 평소였다면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을텐데, 충사가 낀 장례식에선 염사또한 수충守蟲) -염을 하고 입관을 할 때까지 밤을 세워 시신을 벌레로부터 지키는 일. 수체(守體)라고도 한다-을 도와야했기 때문에 잠은 커녕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다. 피로한 만큼 벌이가 느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이, 그것도 반백이 넘은 노인이 할 짓은 못됐다. 염사가 지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상갓집 대청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염사는 담뱃대를 쥔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다음엔 어딜 갈건가? 얼마전 사환 아이가 의뢰서를 가져온 건 봤는데.”
“아, 해남에서 온 건 거리가 있어 거절했습니다. 제가 도착할 즘엔 수충할 시신이 땅에 묻혀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가, 그 근처엔 충사가 없어 곤란할텐데….”
“이 맘때즘이면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충사들이 많으니 괜찮을겁니다. 제게 연락이 닿은 걸 보면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명우가 팔을 뻗어 목함을 끌어오니 물건들이 서로 부딪혀 덜그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서서히 멀어지는 상엿소리를 들으며 염사가 사발에 막걸리를 따랐다. 명우가 함을 열자 풀내음과 함께 절간에서나 날 법한 은은한 향내가 흘러나왔다.
“그럼 어디로 가려고 하나?”
“제천엘 좀 들리려합니다. 꼬이는 벌레가 많아 향을 많이 피웠더니….”
“산천에 가지 않구?”
“제가 거래하는 향장은 제천에 있거든요.”
함 안을 뒤적거려 백단으로 된 향통을 꺼내니 안엔 두어개의 향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다음 의뢰지에 갔다고 한들 며칠 밤낮을 피워놓기엔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고사하길 잘했지. 명우는 계속 함 안을 뒤적거렸다. 동시에 낡은 초가집에 앉아있을 깐깐한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염사가 명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궁금했는데 말야…. ”
염사가 담뱃대 끝에 누름돌을 넣어 불을 껐다. 소분해놓은 약초며 녹빛 염료같은 가루가 담긴 병들을 꺼내던 명우가 염사를 바라봤다.
“삼메꾼들관 친하지 않나? 왜 향장이랑은 그리 반목하고들 사나?”
의아한 표정으로 염사를 보던 명우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반목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거래를 트기 어려울 뿐이죠.”
“왜?”
“충사가 필요로 하는 향은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지 염사가 고개를 기울이자 명우는 가루가 담긴 병 중 하나를 들어 염사의 눈 앞에 가져다댔다. 가까이서 보니 입자가 거친것이 마치 말린 이파리를 으깨거나, 한지를 잘게 찢어놓은 것 같았다.
“찻잎인가?”
“벌레의 시체를 가공한 것입니다.”
염사가 손을 뻗어 유리병을 쥐었다. 병이 흔들리자 그에 따라 내용물이 흘러내렸다.
“벌레를 쫒아내기 위해선 다른 벌레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수충에 쓰이는 향이나, 혹은 충사들이 피는 담배엔 반드시 벌레가 재료로 들어가죠. 이 가루에 열을 가하면 잠들어있던 벌레가 되살아나 약한 벌레를 내쫒아주는 연기가 됩니다. 사실 그 연기도 벌레의 신체긴 합니다마는….”
“그래서?”
“그렇지만 이것은 시신에 꼬이는 벌레들을 내쫓기엔 강도가 약합니다. 따라서 다른 벌레들을 써야하는데….”
종종 특이한 성질을 지닌 자를 제외하고 일반인에겐 살아있는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향장은 보이지 않는 벌레를 손질해 향을 만들어야하고-가공한 벌레는 특수한 종을 빼곤 수충의 효과가 없다- 향을 만든 뒤에도 벌레가 살아있는지 감독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뢰한 충사가 향을 만드는 기간 내내 앉아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충사가 재료가 되는 벌레를 향장에게 건넨 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떠나면 향장은 보이는 사람이나, 혹은 의뢰를 위해 찾아온 다른 충사들의 입을 빌려 재료를 손질하고 향을 만든다. 빈 도마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충사의 말을 따라 어느 촉감도 느껴지지 않는 허공을 손질하다 보면 향장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감정을 유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만들어진 향은 향장에게나 완성이지, 충사에겐 실패작이 될 수도 있다. 향장의 입장에선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 장난같은 짓도 견뎌가며 향을 만들어놨더니 의뢰한 충사가 찾아와 향을 직접 볼 때까지 완성의 유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더부살이로 보이는 아이를 키워 향을 만들 때 돕게 하는 향장도 왕왕 있지만, 수고로움에 비해 얻는 수익이 적다. 그러니 선뜻 하겠다며 나서는 향장이 없는 것이다.
“번거롭긴 하겠구만.”
“그렇죠.”
“그렇다면 충사였던 자들이 향장을 하는 것은?”
“시도한 충사가 있긴 합니다. 하던 일에 비해 수익이 안나 그만뒀다고 하더군요.”
“그럼 자네가 만나는 향장은?”
“본래 보이는 분입니다. 일전에 제가 신세를 져 알게 되었죠. 그 전까진 알음알음 찾아다니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말입니다.”
염사가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다. 명우는 텅 빈 목함을 거꾸로 들어 먼지를 털었다. 상엿소리마저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묻혀 사라지고 나니 염사가 곰방대를 다시 물며 혀를 찼다. 담배 연기 대신 걸걸한 목소리로 왼 지장경이 입술 틈으로 흘러나온다. 여시아문 일시불 재도리천 위모설법 이시 시방무량세계 불가설불가설….
‘가을에 좀 부지런히 다녔어야 했는데….’
대청에 늘어놓은 향과 병을 본 명우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떠날 채비를 위해 다리 위에 향을 올려두고 종이매듭을 조심스럽게 조이자 저들끼리 부딪혀 오묘한 냄새를 뿜는다. 염사가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명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해진 매듭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목함 안에 향과 병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빈 통과 약포지를 버린 명우가 대청에서 일어나자 염사가 줄줄 경을 외던걸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슬슬 가보려구?”
“예. 마지막으로 곳집만 살펴보고 출발할겁니다.”
“그래 그럼. 올 사람들한텐 내가 설명할게. 돈은 일전에 거기로 부쳐놓으면 되지?”
“부탁드립니다.”
염사가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명우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목함을 둘러맸다. 묵직하고 익숙한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이윽고 명우는 큰 기와집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곳집은 텅 비어있었다. 산역을 위해 상여를 들고 나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발을 들여놓으니 명우의 얼굴 위로 얇은 실이 걸렸다. 명우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니 성글게 짜인 삼베천마냥 빼곡하게 천장을 뒤덮은 거미줄이 보였다. 근래 마을에 죽은 사람이 없다한들 곳집을 내팽개쳐두는 곳은 없다. 의아함에 선반에 덩그러니 놓인 삽을 들어 거미줄을 헤치니 걸려있던 노란 낙엽과 함께 힘없이 흩어졌다. 곳곳에 알인지 먼지뭉치인지 동그란 구슬들이 문 앞에 매단 발처럼 흔들렸다.
‘정말 관리를 안한 것 뿐인가….’
명우는 삽을 내려놓곤 어깨를 털며 밖으로 나왔다. 드러난 살을 한움큼 베어갈 것처럼 찬 바람이 그를 맞이했다. 여기서 제천까지는 말을 타고서도 며칠이 걸린다. 한겨울 먼 길을 가기 전에 채비할 것이 많았다. 길을 떠나는 명우의 등 뒤로 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